----가난한 삶이 되물림 되는 이유
1. 경제적 자본 부족
2. 정서적 자본 부족
3. 경험적 자본 부족
4. 문화적 자본 부족
5. 가치적 자본 부족
물려받을 경제적 자본이 없다.
초 고도 경제 성장 시대를 지나서 태어난 세대에겐
절대적 빈곤, 상대적 빈곤 모두 겪는 세대다. 대부분은 상대적 빈곤을 겪겠지만...
청소년기에 들어가며 잘사는 또래들이 입는 옷의 차이, 패딩 신발 등 브랜드의 차이로 소외감을 느낌
부모들은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못사는 사람들을 위한 기부를 하면서 우리들보다 못사는 람들도 있는데, 우린 얼마나 행복하니?
라고 하면서 위화감을 느낀다.
이런 빈곤으로 경제적 자본이 없다보니 아껴야되고 배우고 싶은것을 참으며 철이 빨리든다.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을까? 적어도 현대 젊은이들은 힘들 것이다.
정서적 자본이 모자라다
부모는 돈벌기 바쁘니, 자식들의 문제에는 소극적이고 알아서 크게 방치한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
돈때문에 싸움질하고, 신세 한탄하는 어머니, 매일 술마시는 아버지, 이덕에 자식들은 ptsd가 걸릴 수 있다.
결국, 부모로부터 나오는 근원적 자존감이 낮아진다. (부모가 나를 지켜줄수 없다, 내가 왜 태어 났는가, 부모는 나를 왜 만들었나, 행복하지 않은데)
이런 경제적 한계 때문에 많은걸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게된다.(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갖고싶은 것을 포기하고, 바라는 모습을 포기한다. 돈이없어 못하니까, 우리 분수에 무슨)
이런 원인으로 소극적이고 자신감없고 욕심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발전할 원동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크고 성인이 되면 주변사람들을 깎아내리고 질투하며, 현실을 비판하게 된다.
즉 꼬이고 비관적인 면이 생긴다.
경험 자본이 부족하다. (실제로 해보는 것)
부모의 시야가 좁아 가난을 탈출하는 방법을 모른다.
가난을 탈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공부다.
공직이든 전문직이든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들을 밥만 먹여 키운다. (입에 풀칠하며 고등학교 까지 보내주면 충분하다 라고 생각함)
경제적으로 무지하고 무능하여 앞날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없다.(깊이에도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넘어 성장하기 보다 빨리 취업해서 돈버는데 보태라 는 전략이 대부분이다.)
취업 준비 기간을 가지기 힘들며, 취업 준비도 가치있게 가지기 어렵다.(집에서 서포트 받는것도 어렵다. 결국 적성과 무관한 직장에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갈 가르쳐 주는 것에 있어 한계가 있다.
문화 자본이 빈약하다.
밥상 머리 교육이 없다. (식사하면서 필요한 인성을 형성해 주는 것)
중고등학교 다니면, 야자, 학원 등 볼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러나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힘든일은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알려주지 못하고, 자녀는 배우지 못하며 스마트폰만 보게된다.(편한길로 가는것이다.)
의식주를 넘어 음악, 미술, 기타 여가생활은 -> 삶을 행복하게 한다.
또한 이것저것 해봐야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 / 잘하고 못하고를 알게된다.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다.)(가난하면 많이 못한다.)
이런 문화 자본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선 사람들만이 고민할 수 있는 주제이다 보니 가난한 집에선 이를 챙기는게 거의 불가능하다.
조선에선 양반들이나 난치고 거문고 뜯었다. 중세 유럽에도 귀족들이나 음악회 열었다.
그러나 지금 10대 20대는 어느정도 교양을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가난하다면 남들 다 누리는데 본인은 누리지 못하는 세대다.(가난하면 소외되게된다.)
부모가 애들한테 주식보는 법, 레스토랑에서 식기 쓰는 법, 정치 성향도 닮게되고, 경제 시사 성향이나 인지 패턴도 따라가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교양을 가진 사람들을 부럽다고 한다.
- 부모가 책읽는 모습을 보고자란 자녀들은, 책읽는 습관도 닮게된다.
보고들은 가치 자본이 거의 없다.
자녀가 보고 배울 수 있을 만한 게 거의 없다.(부모로부터 삶의 지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어렵다.)
자식은 부모의 인생관, 지식, 교양, 습관, 인지 패턴, 감정까지 보고 배우게 된다.
특히 부모들이 욕하고 소리치는 의사소통 방식도 배우게 되는데,
인간관계에서 디테일한 대화 방식이나 정제된 소통 방법을 부모로부터 볼 수 없다면 사회화가 덜된 사람이 될 것이다.
부모의 인생 비관하고 신세한탄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자녀가 어떨 것 같은가? 자기 자신과 타인, 세상을 향해 같이 비난할 확률이 높다.
어떻게 하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해본 적도 해볼 생각도 없을 것이다.
삶의 첫번째 멘토인 부모가 이런 것 들을 보여주며 자녀들은 자연스래 습득하게 될 것이다.
배려, 성실성, 책임감, 신뢰라는 가치를 부모로부터 배워야 한다.
---- 경험 자본, 문화 자본은 내가 여유가 되어야 누릴 수 있다. (수영, 학원, 음악회, 미술관 등)
---- 가치 자본은 예절, 교약, 습관, 판단력, 배려 같은 무형적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가치 요소이며, 돈으로 배우기도 힘들다.(성격과 성품)
---- 가치자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가난하지 않아야 이런 능력을 갖추고 가르쳐 줄 수 있는데, 흙수저 부모의 삶은 가난하고 위의 자본을 갖추기 힘들다.
-- 갖추지 못한 자본들의 영향이 자녀들에게도 미치며 이런 삶이 자식에게 까지 되풀이 되는 것을,
흔히 '가난이 되물림 된다' 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 흙수저 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들은 부모는 상처를 입게 된다.
무능한 부모, 못난 부모 라는 소리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 자기자신을 흙수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부모가 돈이 없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부모를 상처입히고 싶어서 일까?
흙수저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왜 본인이 흙수저라고 느끼는 걸까?
자기가 힘들다고 그냥 흙수저라고 자칭 하는건 몰상식한 행위이며, 그정도로 무지한 사람도 잘 없다.
심지어 부모가 자신을 아껴주진 않지만 경제적으로 뛰어나고 배울게 많은 사람이라면, 다른 의미로 삐뚤어져 있을진 몰라도 자신을 흙수저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흙수저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왜 본인이 흙수저라고 느끼는 걸까?
- 자기 부모는 정말 게으르게 살아왔다. 인간적으로 한심한 사람이다.
- 열심히 살아가지 않고 한방 한탕만 노리며 간만보다가 말아먹고 나이만 먹은 사람이다.
- 또는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을 만들었으며 키워줬으니 성인이 되면 나에게 돈을 일부 갖다받쳐라.
- 결혼할때 부모가 돈 한푼 안보태줬는데, 해외여행 가도록 돈 보내달라.
라는 의견에서 공통점이 무엇인 것 같은가?
<자신의 인생이 나아지도록 케어해주지 못 한 부모라고 생각하는 점> 이며, 이렇게 느낄때 자신을 흙수저라고 칭한다.
-- 자기 자신을 흙수저라 낙인 찍고, 흙수저 부모라고 낙인 찍는 것이다.
정말로 본인이 흙수저 라면 어떨까?
다른 금은동쇠수저들과 다르게 출발선상에서 뒤처지고 불리하게 시작하고, 가속도도 낮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보니,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낫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상대적 차별에서 오는 불합리함과 격차에 상처를 크게 입었을 것이다.
부모가 돈이없어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없었지만 본인들의 역량 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키워줬고, 열심히 본인의 삶을 살았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돈이 없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칭할 수 있을까?
돈이 없었고, 멋진 옷도 입지 못했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도 없었지만 어린시절 행복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흙수저라고 자칭 하더라도 벗어나려 하지 않을까?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나도 흙수저 이지만 도움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길을 탐색하고 배우고 공부하며 프로로써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 전단지 돌리는 일, 편의점 일 같은 아르바이트 부터 시작해서 부모의 지원 없이 스스로 찾고 지원하고 노력하여 금융권에서 일하게 되었다.
- 부모 뒷바라지 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을 잃고 직장도 잃었지만, 스스로 건강을 회복하고 기술을 익혀 다시 직장을 찾아 일하고 있다.
-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 여럿 있으며 나도 이렇게 역경을 딛고 일어났다.
이런 사람들이 흙수저라 지칭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힘들었겠구나, 나도 힘들었다. / 나는 했는데 너희들도 할수있다. / 나는 했는데 너희는 왜 못하느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은 흙수저가 아니게 되는 걸까?
본인이 풀렸다고 해서, 부모까지 풀리는 걸까? 그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흙수저라는 말은 진짜로 죽을 때 까지 사라지 않는 낙인이 되는걸까?
이런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가난하다면 자식을 낫지 않는게 서로에게 더 나은 길이 될까?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 혼인을 하고 자녀를 만들고 기르는 일에는, 평생에 걸쳐 어마무시한 돈과 정신적 사랑이 필요하며 소비해야 하는 행위다.
그런데 가정 경제가 무너지고 부모가 가난해지고 예민해지고 서로를 상처입히는 환경이 되며 자식들은 본인도 모르게 흙수저가 되어 버렸다면?
- '스스로가 흙수저라 인정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뒤에 부모님들이 수명을 깎아가며 노력한 끝에 경제를 회복했다 하더라도,
'흙수저가 됬었다가 아니게 되었다.' 라고 자식들이 말하고 다니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숫가락에 흙을 털어내고 가정을 다시 일으킨 영웅이라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씁쓸할 것이다.
결국 '흙수저 부모 였었다.' '흙수저 였다' 라는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강하게 기억에 남아 쉽게 잊어지지도 않으며, 트라우마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흙수저'라는 것에 대한 부정을 받아들이고 거기 짓눌리지 않도록 단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누가 언제 어느 순간에 이 단어로 나를 후려칠지 모른다.
다시 그런 단어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흥 하면서 '그래. 였었지'라고 넘길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낙인은 나를 좀먹고 지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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